4개월후.
이제곧내가기획하고개발전과정을 맡아진행한 Y전자의새로운프리미엄가전제품이세상에선보인다. 처음으로기획분야에도전장을던진뒤 1년이넘는 시간동안우여곡절도많았지만이모든 것이이제곧탄생할희대의역작, 나의 첫작품을위한것이었다면그리비싼수업료는아니었다고생각하는순간! 내인생최대의위기가닥쳐왔다.
신제품출시와관련한모든준비를마친상태에서오랜만에여유있는시간을보내며우리제품이‘대박’날때받게될인센티브를어떻게쓸것인가를두고팀원들과시시덕거리고있었다. 갑자기사무실문이거칠게열리더니팀장님께서웬 곰인형을들고들어오시는것이아닌가.
어리둥절해하면서뭐냐고묻는우리를 보신팀장님께서인형이입고있는옷의 단추를살짝눌렀고, 우린봐서는안될 것을보고야말았다. 그냥털인형에불과한곰인형의온몸에서빛이나오는것이 아닌가.
빛? 조명!
그렇다. 그건우리가미처생각지도못하고있던또다른기능성조명기기였던 것이다. 우리신제품출시를코앞에둔시점인데우리보다앞서유사제품이시장에나온것이다. 독신자의심리적안정을 도와주는특수조명기기라는콘셉트로. 긴급회의소집!
주변정보망을총동원하여알아본결과는더욱충격적이었다. 우리회사를떠난 유대리님이알고보니경쟁사의기획팀장으로옮겼고, 그회사에서우리가기획한특수조명기기를출시한것이다.
아! 그러고보니예전에유대리님에게 병문안갔을때의예상치못한말쑥한옷차림과서류가방이? 헉! 얼마전에뜬금 없이나한테찾아와서회사동향을묻던 것도? 그렇다면이건스파이짓이아니고 무엇이란말인가! 대체, 어쩌다이런일이!
손대수는유대리님을당장고소하고경쟁사에도판매금지가처분소송을해야한다고했다. 무엇보다‘그인간’을찾아가서주먹이라도한대날려줘야겠다면서 길길이날뛰었으며, 팀원모두는패닉상태에빠졌다.
그렇다고 1년넘게준비한신제품출시를중단하거나늦출수 도없는일이다. 일단유대리님의회사정보유출건은법무팀에넘기기로하고대책마련에나섰다.
그동안대수롭지않게여긴그의행동과 나를찾아와나눈대화를되짚어본결과 유대리님이가지고나간정보는지금의 우리제품과차이가있었다. 우리제품의 타깃을수험생과직장인으로바꾸기전, 그러니까몸과마음이외로운독신자가 타깃이었고여기에나름대로아이디어를 부여한것이부드럽고포근한질감의인형에기능성조명과전자파를이용해심리안정기능을첨가 한것이었다. 그냥놔두면보통인형인데인형을안을때의포근한느낌을최대한살리면서조명기능을첨가한것이나쁘지는않은아이디어 같다.
우리제품의디자인이나기능을바꾸기에는이미늦은상황에서유대리측제품의시장판매상황을지켜보면서마케팅 방향을다시보완하기로했다. 일단백화점과양판점, 대리점등으로흩어져서곰인형조명기기의판매상황을살피기로 했다. 특수한콘셉트를지닌신제품이어서인지광고를많이하고판매대도전면 배치하여고객들의시선을끌고있지만 예상한것 만큼많이팔리지는않는다. 전자제품들사이에놓여있는곰인형이물론다양한불빛으로시선을유도하긴하지만오히려생뚱맞다는느낌도든다.
양판점으로출근한지 5일째. 드디어독신으로보이는한여성이곰인형조명을 하나구입하기에얼른따라가서왜샀느냐고물어보자“유치원교사인데아이들이좋아 할것같아서비싸지만공금으로 샀다”고답한다.
‘아싸!’
타깃실패! 홍보실패! 유통실패! 곰인형조명은대중적인관심을불러일으키기에는무리가있어보인다. 헉! 그렇다면, 우리제품도? 셀링포인트(sellingpoint)가다르긴하지만이런흐름이면 비슷한콘셉트의우리제품도실패할가능성이있다는말아닌가? 이제어떻게 해야하지?